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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64회 작성일 0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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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질병은 질병일 뿐…빗대지 말라 [속보, 연예/문화] 2003년 01월 24일 (금) 17:21 미국의 문화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잔 손택(70)의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이후)이 번역, 출간됐다. 질병은 질병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메시지. 질병과 장애를 신의 저주, 죄의 결과로 몰아붙였던 과거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날 에이즈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비유들, 공포·환자판명·관리대상자 지정·접대부·윤락·잠적·잔여수명·색출 등을 떠올려보면 질병에 부여된 은유의 부당한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손택의 개인사로부터 탄생했다. 그는 다섯살 때 결핵으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당시 손택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딸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결핵은 뭔가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손택 자신도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한창 전방위의 평론·창작활동을 펼치던 43세 때 유방암 4기 판정을 받는다. 이때부터 손택은 질병에 들러붙은 사회적 낙인·은유·이미지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정념과 광기의 질병’인 결핵, ‘억압과 돌연변이’의 결과인 암에 대한 은유가 형성, 유통, 정착되는 과정을 소설·희곡·에세이·영화·오페라·의학서적 등 광범위한 텍스트 속에서 추적한다. 이 책의 1부에 해당하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은 저자의 암투병 와중인 1977년 쓰였다. 손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친구를 데려간 에이즈란 질병에 씌워진 오명을 벗기는 데 다시 도전한다. 현대판 흑사병, 동성애·혼외성교라는 음탕한 성행위에 내려진 천벌에 비유되는 에이즈는 신체 내부에서 발병한 암과 달리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란 이미지 때문에 종말론적 환상, 체제전복에 대한 공포, 정치적 보수성에 대한 합의를 낳는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결핵과 20세기의 암에서 시작된 질병에 대한 사유를 포스트모던 시대의 에이즈까지 확장시킨 88년작 에세이 ‘에이즈와 그 은유’가 이번 책의 2부에 실려 있다. 손택에 따르면 은유란 철학이나 시만큼 오래된 정신작용이며 과학적 지식과 표현력을 포함해 각종 이해방식을 낳은 기초이다. 그러나 현실을 추상화하고 해석한 결과로서의 은유는 세계를 투명하게 이해하는 데 역효과를 미친다. 손택은 타인에게 손가락질받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시대인을 위로하는 동시에 질병의 은유를 통해 “국가의 생존, 시민사회의 생존, 세계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편집증적 사회를 공격한다. 그는 98년 또다시 자궁암 절제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해석에 반대한다’(1966년) ‘사진에 관하여’(1978년) ‘은유로서의 질병’ 등을 통해 추구해온 ‘투명성’이란 사유를 집대성한 저서 ‘타자의 고통에 관하여’를 집필중이다. 손택은 미국 펜클럽회장을 지내던 88년 서울을 방문해 김남주 이산하 등 구속문인의 석방을 한국정부에 촉구한 바 있으며 93년 사라예보 내전의 참상을 알리고자 전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기도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다. /한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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