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21] 검은 대륙의 외로운 싸움 > 뉴스읽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읽기

정보실

뉴스읽기

기타 [한겨례21] 검은 대륙의 외로운 싸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65회 작성일 07-01-17

본문

검은 대륙의 외로운 싸움


에이즈에 걸린 16명의 엄마와 58명의 아이들의 공동체 은코시 헤이븐…병원 갈 차비가 없어 치료약을 못 받는 현실에 맞는 현명한 원조를…


▣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조버그’라 불리는 그 도시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그 도시에 관해 들려오는 온갖 잔악한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이고, 인구의 절반은 범죄 조직의 일원이었다. 수분마다 강간 사건이 일어나고, 강도와 살인이 밥 먹듯이 자행되는 곳이었다. 어쨌든 소문은 위협적이었고, 아프리카를 종단 중인 많은 여행자들은 그 도시를 건너뛰어 케이프타운으로 직행했다. 나도 그냥 통과해버리고 싶었다. ‘은코시 헤이븐’(Nkosi Haven)만 아니었다면.


강도와 살인의 도시에서


지난 2000년 세계 에이즈(AIDS) 총회가 남아공에서 열렸다. 11살 소년 은코시가 단상에 올랐다. 은코시는 에이즈에 걸린 엄마로 인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지니고 태어났다.

02101900012007011282_1.jpg

△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똑같아요!”은코시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가 있는 거실에서 ‘양어머니’게일(왼쪽)이 한 엄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를 보살펴주고 받아들여주세요.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우리는 아주 정상이에요. 우리는 두 손이 다 있고 두 발도 있습니다. 우리는 걷고 말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꼭 같아요!” 어린 소년의 연설은 세계를 울리고, 멀리 바다 건너 작은 반도에까지 날아와 나를 울렸다. 6개월 뒤 은코시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이름을 딴 ‘은코시 헤이븐’이 조버그에 세워졌다. 남아공을 찾은 건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조버그에 도착하니 소문은 사실인 것 같았다. 대낮의 거리조차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없었다. 흑인 정부가 들어선 지 12년째. 날마다 백인들이 망명(?)을 떠난다는데도 흑백 간 빈부 차는 여전해 보였다. 백인들은 그들만의 거주지에서 무장경관이나 경비회사의 보호 아래 살고 있었다. 숙소의 주인(물론 백인이었다)은 그 도시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일은 스스로 강도를 불러들이는 일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해왔다. 이동할 때는 무조건 택시를 타라고 했다. 결국 은코시 헤이븐에 가던 날도 택시를 불러야만 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빅토리아풍 흰 건물 두 채가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치안 때문에 신분이 확인된 뒤에야 철문이 열렸다.


그곳은 은코시를 키운 양어머니 게일이 은코시가 세상을 떠난 뒤 새롭게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에이즈에 걸린 16명의 엄마와 58명의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은코시는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함께 보호시설에 살았다. 은코시마저 에이즈에 걸린 게 들통 나 둘 다 쫓겨날까 두려웠던 친엄마는 그를 게일에게 보냈다. 은코시는 3살 때 게일에게 온 뒤 세상을 떠나던 12살 때까지 그녀와 함께 살았다. 적어도 은코시 헤이븐의 아이들은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곳은 모자가 함께 거주하고, 엄마가 죽은 뒤에도 아이들은 고교 졸업 때까지, 즉 자립이 가능한 나이까지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02101900012007011283_1.JPG

△ “내 이름은 한국의 자동차 이름과 같아요.”은코시 헤이븐에서 만난 키아는 헤어질 때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올리브 오일을 많이 먹으라고?


은코시의 양엄마이고 그곳의 책임자인 게일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게일은 친구의 오빠가 에이즈에 걸려 사망한 뒤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가 전해주는 남아공의 에이즈 문제는 내 상상력을 넘어섰다. 남아공에서는 매일 700명이 에이즈로 죽는다. 전체 인구 4800만 명 가운데 약 11%인 540만 명이 HIV 감염자이고, 25~29살 여성의 32.5%가 HIV에 감염되어 있다. 201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25%가 에이즈 감염자가 될 거라고 했다.


그녀는 흑인 원주민 사회의 어리석은 통념이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다고 믿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흑인들은 정액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당연히 자위는 나쁜 행위로 치부돼 금지된다. 그래서 성관계를 처음 갖는 나이도 다른 나라보다 어리고, 남아공의 강간율은 세계 최고라고 했다. 은코시 헤이븐의 소녀들 중 5명이 에이즈에 걸린 남자에게 강간을 당해 HIV에 감염됐다고 한다.


에이즈는 이제 적절한 약물 치료만 병행되면 20년까지 살 수 있는 만성질환에 가까운 병이 되었다. 그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말을 서둘렀다. 2004년부터 남아공 정부는 HIV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품(ART)을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에 갈 차비가 없어 그 약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또 약을 장기 복용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영양 공급이 필수인데 그 역시 불가능하다. 에이즈에 걸린 흑인 대부분이 실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항변했다. “무지한 정부는 환자들에게 올리브 오일과 마늘을 많이 먹으라고 하는데, 중산층인 나조차도 올리브 오일을 마음껏 사먹을 수는 없다”고.


그녀는 국제 원조의 비효율성도 꼬집었다. 돈을 주지 말고 약과 음식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했다. 국제사회로부터 에이즈 기금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금액이 부패한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면서. 나는 그녀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이 일을 어떻게 해나가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틈이 없다”고, 그냥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고.

02101900012007011284_1.jpg

△ 에이즈에 걸린 16명의 엄마와 58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은코시 헤이븐을 운영하는 게일이 아이들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키가 훤칠한 흑인 소녀가 들어왔다. 게일이 미리 준비한 듯한 봉투를 건넸고, 잠시 뒤 그녀는 초록색 공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게일은 그녀를 끌어안고 예쁘다며 거듭 칭찬을 했다. 내 눈에도 칭찬이 과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에이즈 고아 조안의 고교 졸업 파티가 그날 저녁이었다. 양어머니가 준비한 드레스를 입고 조안은 수줍게 웃었다. 게일은 아이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좀더 쾌적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짓고 있다.(70명이 살기에 현재의 건물은 터무니없이 좁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도자기 굽기, 수공예품 생산 등 자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가난하고 검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나


은코시 헤이븐의 미래와 관련된 구상으로 바쁜 그녀를 보내고 정원으로 나갔다. 어린아이들이 정원의 그네와 철봉에 매달려 웃고 있었다. 젊은 엄마들은 빨래를 하거나 그릇을 닦고 있었다. 담벼락 아래에는 아직 덜 자란 10대의 소년·소녀들이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수다를 떨었다. 그 누구도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집 마당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밝았고, 어여뻤고, 빛나고 있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팔을 내밀고 품에 안겨왔다.


닭 볏 같은 머리 모양을 한 14살의 소년 키아. 과학자가 꿈이라는 그가 내게 말했다. “내 이름은 키아예요. 한국의 ‘키아’자동차와 같은 이름이죠.” “한국의 어린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다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게임이나 로봇을 자유롭게 즐기면서 자란다는 게 사실인가요? 나도 한국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헤어질 때 키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반에 준호라는 한국인 친구가 있어요. 이제 당신까지 전 2명의 한국인 친구가 생겼네요.” 내가 키아의 친구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도 키아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그곳을 빠져나올 때 키아는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이즈 환자들의 정치 조직체 ‘치료활동캠페인’(TAC)의 공동 설립자인 자키 아크마트는 2002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에이즈 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검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에게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생명의 가치가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그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가난했고, 검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삶에 무관심한 채 살아왔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내가 처음 만난 그들. 그들은 여전히 외롭게 싸우고 있다.

dotline_559.gif
blank.gif

2015년 남아공 평균수명은 48살

2010년에는 25%가 감염자… 에이즈에 관한 몇 가지 통계

국제기구인 유엔에이즈(UNAIDS)의 2006년도 연차보고서를 보면, 전세계엔 약 4200만 명의 HIV 감염자가 있다. 그 가운데 2900만 명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하루 평균 6천 명이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는다. 희생자 대부분은 25~35살의 청년들과 어린이들이다. 그리고 매일 2천 명이 새로 감염되고, 그 가운데 3분의 2가 15~20살의 청소년이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HIV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2006년에만 210만 명으로, 지난해 전체 사망자의 72%를 차지한다. 지구촌 전역에서 매일 1만1천 명이 새로 HIV에 감염되고 있다. 감염자가 8초마다 1명씩 생기는 꼴이다.

현재 남아공 국민의 평균수명은 51살이다. 이는 지난 1990년의 64살에 비해 13살이 줄어든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에이즈로 인해 평균수명이 13년 줄었고, ‘항바이러스치료요법’(ART)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2015년에 이르면 남아공 평균수명은 48살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0년이면 남아공 인구의 25%가 에이즈 감염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몇 가지 통계를 더 살펴보자.

- 15~49살 연령대 아프리카인 가운데 7.4%가 에이즈에 감염.

- 아프리카 대륙 전체 사망자의 25%가 에이즈로 사망.

- 사하라 이남 지역 15∼24살 임신 여성의 에이즈 감염률: 스와질란드 39%, 보츠와나 32%, 남아공 24%, 케냐 22%, 짐바브웨 18%, 말라위 18%.

- 현재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인한 고아는 1500만 명. 2010년까지 2800명의 에이즈로 인한 고아가 생겨날 것으로 추정.

-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는 에이즈로 인해 평균수명이 30년까지 줄어들기도 했음.

- 보츠와나: 성인의 36%가 에이즈에 감염. 평균수명은 30살 미만.

- 스와질란드: 성인 3명에 1명꼴로 에이즈에 감염.

- 남아공: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540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

blank.gif
dotline_559.gif

회원로그인

종로센터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17, 5층 ㆍTel.02-792-0083 ㆍFax.02-744-9118

부산센터 : 부산시 동구 범일로 101-4, 2층 ㆍTel.051-646-8088 ㆍFax.051-646-8089

이태원센터 :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33, 3층 ㆍTel.02-749-1107 ㆍFax.02-749-1109

Copyright © www.ishap.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