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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780회 작성일 0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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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김용애 선교사 “에이즈 고아들에게 희망을”
4~5백 명 규모 에이즈 고아원 설립 추진 중


김용애 선교사(뒷줄 왼쪽)가 하루도 빠짐없이 수거하는 식품들로 매주 2천여 명의 빈민들이 무료급식을 받는다. ⓒ남아공 김용애 선교사
“10년도 채 못 사는 인생마저 육체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로 얼룩진 에이즈 고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줄기 빛을 선사하는 것이 남은 소원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7년 간 빈민 구제와 영혼 구원에 열정적으로 헌신해 ‘코리아 마더 테레사’라는 별칭을 얻은 김용애 선교사(63, 서울 원천교회)가 3년 4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3개 흑인학교에서의 채플 인도와 무료급식, 흑인 빈민촌과 혼혈인 타운에서의 무료급식, 재판소 전도 등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녀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어떤 분들은 이제 (사역을)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교현지에서 남자 여러 사람 몫을 한다는 말을 들어요. 저도 늙었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아예 나이도 안 세고 산다니까요.”

25년 동안 중학교 가정과목 교사로 일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46세 때 안정된 삶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그녀는 좀 더 젊은 나이에 헌신하지 못해 아쉬움이 큰 듯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인지 모른다. “몸도 병약한 편이라 5년 안에 죽을 거라 생각하고 5년치 선교비와 물품만 준비해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벌써 17년째니 전 항상 기적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보츠와나의 한 현지인 학교 교장이 되기로 결심한 김 선교사는 1991년 3월 학교에 도착한 첫 날 ‘신세 망쳤구나’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학교라고 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교육 환경과 여건은 그녀가 상상하던 곳과 거리가 멀었다. “별별 소리를 듣고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사람들이 ‘헌신했다가 패가망신했다. 헌신도 적당히 해라’고 말할 것 같아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 준 교회의 헌신에 재 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죠.”

보츠와나에서 5개월 동안 기도사역을 한 후 보츠와나 남쪽과 국경을 접하는 남아공에서 포체프스트룸새출발센터(PNBC)를 설립한 그녀는 거리 전도부터 시작해 재판소에서까지 전도 하기 시작했다. 동양인이 와서 동양 종교를 전파한다고 오해 받기도 했다. “멸시와 무시를 받으면서 스스로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다”는 그녀는 재판소 대기실에서 몸이 아픈 사람들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짧은 메시지를 전하고 기도해 주는 사역을 끈기 있게 해 나갔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성령을 받아 마음이 뜨거워지는 사람들이 생기고 위암, 뇌암 환자가 낫고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친 변호사의 아들이 다시 걷게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또 재판소의 무거운 분위기를 쇄신해 나가자 판사, 검사, 변호사 등에게 믿음과 신뢰를 얻었다. 지금도 김 선교사는 매일 재판소에서 하루에 2~3백 명의 사람들에게 일대일로 메시지를 전하고 기도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동역자들과 함께 한 김용애 선교사. 에이즈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면 무료급식은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역도 계속하기 원하셨다고 그녀는 말했다. 뒤에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길게 선 줄이 보인다. ⓒ남아공 김용애 선교사

매주 2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무료급식을 주기 위해 그녀는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직접 트럭을 몰고 대형마트인 ‘픽앤페이(Pick and Pay)’, 청과물마켓인 ‘과일과 채소(Fruit and Vegitable)', 베이커리집인 '블루 리본(Blue Ribbon)’ 등을 다니면서 식품을 지원 받고 있다. 제 때 식품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하루에 3~5번씩 방문하기도 한다. 더운 날씨에 식품이 금방 상하기 때문에 모아 온 식품은 번거롭더라도 곧바로 선교회와 교회에 있는 11대의 대형 냉동기에 다시 나눠 넣는다. 현지 교회를 통해서 흑인 타운에 식품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냉동 상태의 고기와 빵을 쌓아두면 2~3곳의 흑인, 혼혈인 타운 사람들이 와서 알아서 가져가기도 한다.

김 선교사는 매주 화요일마다 빈민자 350여 명에게 나눠줄 수프와 밥을 교회 부엌에서 직접 만든다. “큰 솥 4개에 고기와 야채를 한꺼번에 넣으면 끓이는 동안 음식이 쉬어요. 그래서 물이 펄펄 끓을 때 고기를 넣고 빨리 익히죠. 주일에는 성도들이 가져 온 묽은 수프에 고기를 듬뿍 넣어 다시 끓여 줍니다. 물론 모든 급식 전에는 반드시 예배를 드려요.”

식품을 트럭에 실어주는 하급직원들이 선물이나 많은 돈을 요구하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할 때면 화가 나고 창피해서 당장 무료급식 사역을 관두고 싶을 때로 있었다. 하지만 기도할 때 항상 주님은 그녀에게 ‘나도 핍박 당했다. 나도 십자가에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깊이 위로해 주셨다고 했다. “백인들도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앉는 판에 흑인의 90% 이상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삽니다. 제가 하루 참으면 수백 명이 배부를 수 있으니 인내할 수 밖에요.”

매주 월, 수, 목요일에는 정기적으로 흑인고등학교에서 채플 인도를 하고 있다. 교사로서 쌓은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예화를 들며 십계명과 마태복음, 요한복음 등을 꼼꼼하게 가르쳐 왔다. 먼저 윤리와 도덕부터 가르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만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의미로 가르치길 원하셨다. “대신 학생들에게 반드시 말씀대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인구 4천 3백만 중 5백만 명 이상이 HIV 보균자이거나 에이즈 감염자인 ‘세계 에이즈 1위 국가’에서 김 선교사는 4년 전부터 에이즈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을 돌볼 계획을 세웠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에이즈를 물려받거나 ‘처녀와 관계를 하면 에이즈가 나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미신 때문에 강간당해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이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사역은 모두 에이즈 고아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김 선교사는 말했다. 작년 정부로부터 고아원 부지 1.8헥타르(ha, 1만8천m²)를 무상으로 받고 지난 4월에는 부지 한 쪽에 남아공 원천교회를 세웠다. 나머지 공간에는 4~5백여 명의 아이들과 입양부모들이 살 주택 50채를 세워나갈 계획이다. 값싼 양철 건물로 된 수용소 같은 고아원이 아니라 제대로 시설을 갖춘 주택을 짓기 위해 2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부모로 적합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는 그 동안 재판소 전도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부탁해 놓은 상태다.

김 선교사는 입양가정들이 구호물자,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가내수공업을 하거나 채소밭을 가꾸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어머니 교실 등을 운영하며 새마을운동 정신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에이즈 고아들은 남아공 원천교회에서 매일 신앙 훈련과 언어, 사회성 등 유년 교육을 시킬 예정이다.

“하나님은 항상 제 능력과 재주를 요구하지 않고 ‘순종’을 요구하셨어요. 우리에게 맡긴 사역을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감당하는지 순간순간 체크하시지요. 이번에도 저는 늘 그래왔듯 현지인들을 도와주고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성령이 역사하시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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