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위험집단이 아니다
에이즈 예방 사업이나 정책을 제시한다는 논문이나 정책 보고서, 그리고 신문 기사까지 그 어디든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가 바로 ‘고위험집단’이다. 고위험집단으로 여겨지는 대상을 집중관리하면 일반 국민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논지이며, 고위험집단의 1순위로 항상 남성 동성애자 그룹이 언급된다.
고위험집단! 보건복지학 차원에서는 일반적인 용어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최소한 에이즈예방사업에서 쓰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위험집단이란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이 높은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위험이 높은 집단’이며 실제로도 그러한 용도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를 눈치 챌 수 있는 건 바로 고위험집단을 ‘집중 관리해 전파를 막자’는 대목에서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높으므로 감시해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물론, 당사자에게 이런 지적을 하면 절대 그런 뜻은 아니었노라고 발뺌한다) 하지만, 고위험집단에 대한 인식이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제대로 된 예방사업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고위험집단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위험에 빠진 사람들’로 고위험집단에 대한 예방교육사업은 고위험집단 내의 '위험'을 없애는 것, 즉 감염률을 낮추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고위험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험성을 지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그걸 왜 위험이라고 부르는지, 그 위험을 어떻게 피해야하는지 등을 지각하고, 또 그 자각을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고민과 실천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제점은 고위험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위험성을 부정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두려워해서 오히려 회피하는데 있다. 그래서 홍보와 교육, 익명 검사와 콘돔 배포, 양질의 정보 제공마저도 부담스럽게 느낀다. 이것은 사회에서 고위험집단을 바라보는 시각에 편견과 차별이 있기 때문에 더욱 무거운 주제가 된다.
만약 굳이 ‘고위험군’ 또는 ‘고위험집단’이란 표현을 계속 써야한다면, 고위험집단에 대한 에이즈 예방교육사업을 짜는 데 있어 이 점만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고위험집단은 위험에 빠트리는 이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들이란 점, 그러므로 그만큼 더 강력하고도 세심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 보호와 지원을 위해서는 '위험에 처한 집단'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연구가 있어야 하며, 현실에 기초한 조사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강조하자면, 이것은 동성애자를 특별히 배려해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정당한 요구이다.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국민으로서 정부에 의해 어떤 범죄집단인양 다루어질 이유도 없거니와 납세의 의무와 마찬가지로 국가 예산이 자신들을 위해 올바로 쓰이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도 당연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