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순의 확대경 - 에이즈
초기 HIV 감염이 확대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와 국민 대다수의 무관심이다. 이들이 무관심할 수 있었던 것은 에이즈를 ‘게이들의 역병’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며 여기엔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무시, 편견 그리고 무지가 있었다. 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역시 알 수 없었고 많은 동성애자들이 피할 수 없이 HIV에 감염되어 쓰러져갔다. 또 이런 동성애자가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오해 때문에 또 다른 정신적인 고문과 육체적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원인제공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자였기에 적극적으로 에이즈 예방운동과 인권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에이즈에 관한 정보를 보급하고 예방책을 홍보하고 또한 정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인권존중의 정책과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동성애자가 에이즈 운동을 할수록 동성애자가 에이즈의 원인인양 비추어질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런 오해를 겁내기 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쓰러지는 이들을 돕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 지금은 에이즈가 가난의 병이란 별칭을 얻고 있다. 미국의 여성 발병자의 약 80%가 흑인과 히스패닉이고, 뉴욕과 보스턴의 노숙자의 약 30%가 HIV에 감염되어 있다고 한다. 감염의 배경에는 마약이 있고 성매매가 있으며 또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빠듯하고 빈곤한 일상이 있는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HIV감염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엄청난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은 전 세계가 함께 책임져야 할 큰 과제다.
2004년 유엔에이즈 보고서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의 경우는 인구의 60%이상이 감염되었으며 아프리카 7개국을 대상으로 한 1995년 이후 출생자의 예상 평균수명은 에이즈로 인해 현재보다 13년이나 짧은 49세로 예상된다고 한다. 또한, "동유럽 및 아시아 지역도 에이즈 감염률에 있어 급속한 증가를 보이고 있으며, 마약 상습복용자들이 감염의 주 원인"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생계를 위한 절박한 성매매가 흔하다. 문맹률이 높아 안내 책자를 만드는 식의 캠페인은 효과가 없으며, 콘돔을 쓸 여유도 없고 적절한 성교육을 받을 기회도 거의 없다. 생활의 불안정은 마약복용을 불러오기 쉽다. 에이즈 예방엔 검사가 필수적이지만 7달러 정도 드는 에이즈 검사를 받을 돈도 없을뿐더러 감염이 되어도 감염 사실을 알 수가 없으며 설사 안다고 해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고, 비싼 치료제를 사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선진국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사망에 이르고 있다. 이는 다시 에이즈고아를 낳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빈곤한 삶은 되풀이된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보자. HIV는 실제로 감염 경로가 복잡하거나 감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는 아니다. 옆 사람이 기침만 해도 옮는 감기보다도 전염력이 낮은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왜 에이즈는 이토록 큰 고통을 남기는 것일까? 그것은 사회의 모순이 감염을 확대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그러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그러하고, 강대국에게 억압당하는 약소국가의 비참한 현실이 바로 에이즈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부대표 한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