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후원안내
자원봉사안내
검사일정
iSHAP 칼럼

[홍민욱] 멀리 혹은 가까이

관리자 | 2004.07.07 04:40 | hit. 5038 | 공감 0 | 비공감 0



멀리 혹은 가까이


iSHAP 상담원으로 일한지 1년이 넘어갑니다. HIV와 관련된 이반들의 고민을 듣고 답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반들이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감염경로가 아닌데도 감염을 의심하는 경우입니다. 키스나 단순한 오럴은 감염경로가 아닌데도 계속 감염을 의심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감염되면 일상 생활을 전혀 못하는 것으로, 혹은 국가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으로, 금방 죽는 것으로, 혹은 온 몸에 카포시 육종같은 것이 곧바로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지식이 공포증을 증폭시키고, 더 나아가 HIV/AIDS를 단순한 질병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천형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취급을 하지요.


둘째는 이반커뮤니티가 HIV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자신, 혹은 자신의 주변과 관련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례로, iSHAP 팀장인 김현구씨가 모 게이빠에 콘돔 배포에 관한 홍보를 하러 갔을 때, 그 업소 주인은 자신들과 에이즈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배포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당했던 것은 그 업소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김현구씨와 안면이 있던 감염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HIV/AIDS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 공포를 생각하지 않고 안 보고 안 듣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일부 이반들의 모습 같습니다. HIV/AIDS에 대해 이야기만 무성하지 그 실체는 주변에서 확인할 수 없기에 HIV/AIDS는 쉽게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HIV/AIDS에 대한 예방도 “콘돔을 사용하는 세이프 섹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염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피하는 것”으로 하지요. 오히려 콘돔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나 콘돔을 쓰자고 하는 사람을 의심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상당수의 이반들이 HIV/AIDS에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가까이 있고, 한편으로는 너무 멀리 있습니다.


HIV/AIDS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관리만 잘하면 발병하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의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과잉 의미를 부여하여 공포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지요.


또한 너무 멀리 있습니다. HIV/AIDS가 무섭지만 자신, 혹은 자신의 주변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요. 그래서 이들은 콘돔사용도, 세이프섹스에 대해서도 그리 철저하지 않습니다. 찜질방만 피하면, 번섹만 피하면 되는 줄로 알지요. 그러나 어떤 감염인의 감염 경로는 수년간 사귄 애인이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문란함”을 피하는 것으로 HIV/AIDS가 예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멀리가지도 말고 너무 가까이 있지도 말아야 합니다. HIV/AIDS를 단순한 질병 이상으로 취급해서 과잉 의미를 부여하면 평생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없지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HIV/AIDS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HIV/AIDS는 인류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중의 하나이며, 아직은 완치제가 개발되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치료를 하면 발병하지 않을 수 있고,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개념의 병이라는 것을 알고 HIV/AIDS에 덮여 있는 과잉 의미를 거두어내야 합니다.


또한 너무 멀리 있다면 한 걸음 다가와서 그 실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반 커뮤니티는 HIV/AIDS에 관해서는 고위험집단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동성애 자체로 기인한 것은 아니지요. 동성애자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들로 인해 이반 커뮤니티가 고위험집단이 된 것이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반 커뮤니티가 고위험 집단이라는 것, 그러기에 이반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그 누구도 HIV/AIDS에 관해서 무관하지 않다는 것, HIV/AIDS 예방과 감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라는 것에 대한 인식입니다.


현재 보건원 공식 통계로는 전체 감염인중에서 동성간의 성관계로 감염된 사람이 30%가 조금 넘습니다. 감염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조사로 밝혀진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공식통계일뿐입니다. 전체 감염인 중에서 남성과 여성의 비율에서 남성이 97%이상입니다. 왜 남성의 비율이 이토록 높을까요? 또한 역학 조사시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감추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제가 상담업무를 하면서 몇몇 감염인들의 상담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 역학조사시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사창가에 가서 감염된 것 같다고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감염 사실도 매우 곤혹스러운 일인데, 동성애로 감염되었다고 하면 이중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성간의 관계로 감염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현재의 동성간의 관계로 인한 감염률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감염인을 어떻게 하면 피할수 있을까, 감염인을 어떻게 하면 만나지 않고 비감염인과만 사랑을 할 수 있을까가 당신의 세이프 섹스 방식이라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고 불가능한 것입니다. 당신이 만나는 그 누구도 감염인일 수 있기에 사람을 골라서 만나는 것은 결코 예방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콘돔을 사용하는 세이프 섹스만이 당신을 HIV/AIDS 감염으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이반이라면, 이반 커뮤니티에 나와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한다면 HIV/AIDS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 두어서 공포에 떨지도 말고, 너무 멀리 두어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지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 iSHAP 전문상담원 홍민욱

공감 비공감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 이전글[박광서] 에이즈와 사우나관리자2004.10.07 02:41
▼ 다음글[홍민욱] 세이프 섹스와 바텀관리자2004.05.17 11:03